히브리서 4장 1-13절: 우리가 들어가야 할 안식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저자는 3장 11절에서 언급한 “안식”의 주제를 심화시킨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1절)은 구원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어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 참된 안식이다. “그들”(2절)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스라엘 조상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말씀을 들었으나 그 말씀을 통해 믿음에 이르지 못했고 그래서 안식(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우리”(3절)는 히브리서 독자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참된 안식에 들어갈 희망이 있다. 그 안식은 하나님께서 6일 동안의 창조를 마치고 난 후에 시작되어 영원히 지속되는 하나님 나라를 가리킨다(4절).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착하면 안식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했다(5-6절). 하지만 그것은 참된 안식이 아니었다. 그래서 저자는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지 못했으며, 참된 안식에 들어갈 날은 아직 남아 있다고 말한다(7절). 만일 가나안 정착으로 안식이 완성되었다면 더 이상의 안식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해 “뒤에 다른 날이 있으리라는 것”(8절)을 말씀하셨다. 그 날에 이르면 진정한 안식을 얻을 것이라는 뜻이다(9절). 

다윗이 예언 했던 그 날이 “오늘”(7절)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통해 구원을 베푸실 그 날이 왔다. 우리는 그 “오늘”에 살고 있다. 그 “오늘”이 지나가기 전에 복음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어야 한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랬으나 들어가지 못했던 그 안식에 들어갈 수 있다(9절). 그 안식에 이르면 “하나님이 자기 일을 마치고 쉬신 것과 같이”(10절) 우리도 참된 안식과 만족을 얻는다. 그 안식은 우리에게 허락된 “오늘”이 끝나는 날에 하나님 나라에서 완성될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의 여정에서 낙오하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11절). “힘쓰다”로 번역된 ‘스푸다조’는 운동 경기에 사용되는 단어로서, 전력투구하는 것을 가리킨다. 거짓 교리에 솔깃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의심 해서는 안 된다. 믿음의 길에서 이미 낙오한 사람들은 복음의 말씀을 듣고서도 “그것을 믿음과 결합시키지”(2절) 않았다. 그러나 말씀을 믿음과 결합시킨 사람들은 안식에 들어갈 것이다(3절). 하나님의 말씀은 참되게 믿는 사람에게 “양날칼보다도 더 날카롭게”(12절) 역사하기 때문에 그 말씀의 능력으로 변화되지 않을 수 없다(13절). 

묵상: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6일 후에 안식에 들어가셨습니다. 안식의 상태에서 온 우주와 인류의 역사를 다스려 오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안식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일”을 하는 날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이들에게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일주일에 하루를 성별하여 일을 멈추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들을 즐기며 감사하며 축하하고 예배하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온 우주의 주인이 누구이시며 역사의 주인이 누구이신지를 새롭게 기억하고 그분 안에서 쉴 수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일을 멈추고 안식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안식을 연습하고 미리 경험하는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사십 년 동안의 광야 유랑을 마치고 가나안 땅에 정착한 것도 영원한 안식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게 해 주는 ‘작은 안식’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믿음을 지키지 못하여 그 ‘작은 안식’에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하물며,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려면 더욱 힘써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다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7)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해하고 그분의 자녀로 회복되는 것이 안식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믿음 안에서 그 영원한 안식을 “앞당겨” 경험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믿음 안에서 누리는 그 안식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실 때 완성될 것입니다. 그 때가 오기까지 즉 “오늘”이 계속 되는 동안 우리는 말씀을 믿음에 결합시켜 끝까지 믿음의 길을 걸어야 하겠습니다. 

기도:

주님, 주님 안에서 참된 안식을 얻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지금 누리는 이 안식과 평안이 주님 다시 오실 때 완성될 것을 믿고 기다립니다. 이 평안의 능력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믿음 생활에 더욱 힘쓰게 하시고, 불안과 염려가 전염병과 같이 퍼지는 이 사회에 저희에게 주신 평안의 능력을 흘러보내도록 도와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7 responses to “히브리서 4장 1-13절: 우리가 들어가야 할 안식”

  1. billkim9707 Avatar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게하시고 감사한 마음으로 사는것이 안식인것 같습니다, 매일 아침 생명과 힘이있고 양날의 칼같은 말씀으로 새롭게하는 사귐의 소리가 없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십자가의 은혜를 가볍게 여기는 가련한 처지입니다. 하루 하루를 말씀으로 무장해서 주님앞에 바로서고 새롭게 되는 사귐의 소리모두가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Liked by 1 person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할렐루야!

      Like

    2. gachi049 Avatar
      gachi049

      아멘!!!!!!

      Like

  2.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바람이 일지만 햇살이 좋은 월요일 아침입니다. 이상하게 피곤한 날. 늦게 일어났어요.

    오늘 본문은 복음, 믿음과 안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말씀을 들었으나 믿음으로 지키지못한 이스라엘, 그들은 창조자의 안식에 들어가질 못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열린 두 번째 기회의 창, ‘오늘’ (today).

    오늘 말씀은 실망과 낙심, 고통과 의심의 검은 물결이 일렁이는 바로 ‘오늘’, 그래도 네가 믿음을 지킬 수 있겠니, 그렇게 물으시네요. 기다림이 길어지고 기도가 그저 wishful thinking 인 것 같은 의심이 들 때, 미래가 불안하고 현실이 답답하게 여겨질 때, 내 자존감이 무너지는 바로 그 시간, ’오늘’. 나를 믿고 물위를 걸을 수 있겠니, 오늘? 주께서 물으시네요.

    제가 믿습니다. 믿음 없음을 도와주세요. 간절한 마음으로 간구해요, 주님.

    어둔 골짝 지나가고 험한 바다 건너서 천국 문에 이르도록….주님, 주께로 가까이 주께로 나아가길 원해요.

    도와주세요. 아빠, 아빠! 우리 아버지.

    Liked by 1 person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안식이라고 하면 죽음을 연상하게 되고, 안식일이라고 하면 제칠일안식교회를 떠올리게 됩니다. 히브리서 4장에 나오는 안식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반복해서 읽어봅니다. 내가 읽는 쉬운성경은 안식과 안식처라는 표현을 번갈아 사용합니다. 죽은 뒤에 안식처로 옮겨져 안식하게 될 것이라는 인상을 받습니다. 부고를 접하면 RIP 라고 합니다. Rest In Peace 를 빈다는 뜻인데 요즘에 한국에서도 쓰는 걸로 압니다. 이 말은 평안하게 안식하소서, 평안한 곳에서 쉬십시요 라는 뜻입니다. Rest 는 쉬는 것으로 이해가 되지만 Peace 는 조금 더 깊은 뜻이 있어 보입니다. 평안이나 평강이라는 상태 – 더 이상 수고할 필요가 없는 경지를 가리키기도 하고, 안식처라는 어떤 장소로 갔다는 바램을 품은 인사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본문의 안식이 죽음 이후의 안식 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닐겁니다. 죽은 뒤에 받는 구원, 영원한 만족이 전부라면 히브리서의 1차 독자나 우리나 맥이 빠지는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고 가족이라고 하신 (2:11) 예수께서 사랑하시는데 우리는 죽어서는 물론이요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의 안식을 맛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마친 뒤에 하나님의 품에서 안식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소망이 저 멀리에서 반짝이는 빛이라면, 달리고 있는 동안에 느끼는 평강과 안녕은 내 앞에서 길을 밝혀주는 가로등과도 같습니다. 안식은 하나님의 성품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창조와 안식은 사람이 하나님을 처음으로 경험한 사건입니다. 아담은 창조하는 하나님을 보았고, 안식하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창조와 안식을 보고 듣고 경험합니다. 우리의 삶 안에서 창조와 안식은 파도처럼 연속해서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몸을 우리의 몸처럼 상상해보면 창조와 안식이 하나님의 숨쉬기인지 모릅니다. 주님의 들숨과 날숨이 온 우주의 질서입니다. 시간 전의 시간, 공간 전의 공간도 주님의 질서를 따랐습니다. 3장 12절과 13절은 앞의 절들과 톤이 다릅니다. 우리를 쪼개고 꿰뚫는 말씀의 힘에 대해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이 다 드러난다고 말합니다. 앞에서 길게 이야기한 안식과 무슨 상관이 있는걸까요. 불순종과 어리석음으로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했던 사람들과 같이 되지 말라는 강력한 경고의 말씀으로 읽을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보여주신 길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뜻으로 읽습니다. ‘오늘날’을 마련하신 은혜를 저버리지 말라고, 귀를 기울이고 고집을 부리지 말라는 말씀도 앞에 하셨습니다. 나의 안식을 방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묵상하는 아침입니다. 창조와 안식의 질서를 비트는 크고 작은 갈등과 불화와 불순종과 교만에서 돌아서라는 숙제로 받습니다. 사순절을 지나는 동안 주님의 말씀 안에서 충분히 쉬고 또 쉬기를 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주님의 은혜가 나를 살립니다.

    Liked by 2 people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아멘

      Like

  4. gachi049 Avatar
    gachi049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어서, 어떤 양날칼보다….(12)”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인간의 영혼과 육신을 감찰하심을 믿습니다. 주님. 아직도 영혼과 육신에 말씀에 합당하지 않은 부분이 남아 있슴을 고백합니다. 아집, 교만, 의심, 분냄등이 때때로 고개를 처들고 일어납니다. 성령께서 동행하여 주시므로 매일 공급하시는 말씀을 깨닫게하여 주셔서 다시오실 주님을 맞이 할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Liked by 1 person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