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9장 33-37절: 뒤집어진 나라

2–4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예수님과 일행은 가버나움에 이르러 잠시 머무신다. 그 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오는 길에서 다투는 것을 보았는데 무엇 때문이었는지 물으신다(33절). 그들은 길에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34절)를 두고 다투었다. 예수께서는 그것을 알고도 모른 척 하셨을 것이다. 예수님의 질문에 제자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다. 예수님이 아시고 물으시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일로 다투었다는 것에 대해 부끄럽게 느꼈을 것이다. 예수님이 누누히 가르치셨음에도 그들은 예수님이 지상 왕국을 세우실 것이라고 기대했고, 그 때 누가 일등공신으로 인정 받을 것인가를 두고 다투었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불러 놓고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그는 모든 사람의 꼴찌가 되어서 모든 사람을 섬겨야 한다”(35절)고 말씀하신다. 제자들이 원한 것은 가장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고 싶으면 가장 낮은 자리에 내려와 섬겨야 한다는 가르침은 제자들에게 충격적으로 들렸을 것이다. 그들이 아는 세상의 원리와는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중에서야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를 깨닫는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첫째 되는 것”은 가장 높은 자리에 서는 것이 아니라 가장 큰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했다. 세상 원리에서는 힘으로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는 사람이 “첫째”로 여겨지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가장 낮은 자리에 내려가는 사람이 “첫째”로 여겨진다. 

이어서 예수님은 구경하고 있던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앞에 세우시고는 껴안아 주시면서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들 가운데 하나를 영접하면, 그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는 사람은, 나를 영접하는 것보다, 나를 보내신 분을 영접하는 것이다”(37절)라고 말씀하신다. 당시에 어린이는 사회 계층 중에서 가장 낮고 약한 사람들이었다.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들 가운데 하나를 영접한다”는 말은 “예수님의 뜻을 따라 사회적 약자들을 보살피고 섬긴다”는 뜻이다. “나를 영접하는 것”과 “나를 보내신 분을 영접하는 것”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을 낮추어 약자와 소수자들을 섬길 때, 그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는 뜻이다. 

묵상:

예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눈 뜨고 그 나라의 원리와 질서를 따라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이 땅에서는 세상의 원리대로 살고 죽은 후에는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장차 이르게 될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지금 이곳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원리는 이 세상의 원리와 다를 경우가 많습니다. 이 세상의 원리에서 보면 하나님 나라는 ‘뒤집어진 나라’입니다. 우리의 타락한 죄성이 만들어 낸 이 세상의 원리는 “적자생존”, “승자독식”, “약육강식”으로 요약됩니다. 이 원리에 따라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높아지려 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부리려 합니다. 우리의 죄성은 자신의 이익과 안전을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의 죄성은 나와 같은 사람이 아니면 배척하고 차별하려 합니다. 나보다 더 강하고 부하고 높은 사람에게 줄을 대어 신분 상승을 꾀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눈 뜨고 나면 이 모든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깨닫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원리에 따라 살기를 힘씁니다. 하나님 나라의 원리는 자신을 낮추고 비우고 섬기는 것입니다. 강하고 부하고 높은 사람들에게 줄 대는 일에 관심을 끄고 약하고 가난하고 낮은 사람들에게 눈길을 돌립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따라 사는 사람은 성공하고 번영하기 어렵습니다. 세상은 자신과 다른 원리를 따라 사는 사람을 그냥 두고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때로 따돌림 당하기도 하고 때로 박해를 경험하기도 하며 때로 순교를 당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의 제자는 그 길에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갈 때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그 나라에서 누릴 것은 이 땅에서 잃을 것에 비할 바가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기도:

주님, 저희의 마음과 몸에 세상의 원리가 너무도 깊이 배어 있습니다. 저희는 더 높아지려 위만 바라보고, 더 누리고 싶어 부해지고 싶어하며, 더 부리고 싶어 강해지려 합니다. 그래서 약한 사람들, 밀려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고통 받는 사람들을 지나칠 때가 많습니다. 그렇게 살면서도 하나님을 보고 싶다고,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저희는 얼마나 모순적인지요! 오, 주님, 저희의 마음과 몸에서 세상의 원리를 말끔히 제하여 주십시오. 저희 자신을 낮추어 더 많은 사람을 섬기는 것만이 저희의 기도 제목이 되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7 responses to “마가복음 9장 33-37절: 뒤집어진 나라”

  1. billkim9707 Avatar

    더 앞서고 높아지기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고 치열한 경쟁을하는 세상에 살고있습니다, 말씀 순종하며 주님같이 낮아저서 섬기는것은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특히 모국과 미국의 정치는 상대방을 죽이고 자기만살려고 안간 중상모략을 하는 처참한 상황입니다. 새나라와 새땅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마라나타!!! 아멘.

    Liked by 1 person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오 주여.

      Like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작년 연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여자 손님이 요거트를 두 컵 만들어 계산을 하면서 자기는 워낙 프로즌 요거트를 좋아해서 날씨가 추워도 먹고 싶으면 나와서 사 먹는다고 했습니다. 그날은 집에서 나오다 옆집 이웃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 이웃은 지금껏 프로즌 요거트를 먹어 본 적이 없다고 해서 같이 먹으려고 두 컵을 사 가는거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이웃은 86살 여성인데 식구 없이 평생 혼자 살았다더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더 이상 운전을 하지 않아서 자기가 장도 봐다 주고 틈틈이 들여다 본다고 했습니다. 사소한 대화였는데 여운이 남았습니다. 가게 초기에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남자 손님이 혼자 요거트를 먹고 있는데 가게 앞으로 홈리스가 지나가다 길거리의 쓰레기통을 열어 안을 들여다 봤습니다. 그때 손님은 요거트를 먹다 말고 일어나 홈리스에게 가서 뭐라고 말을 걸었습니다. 문 밖에서 하는 말이니 잘 들리지 않았지만 손님은 앞서고 홈리스는 뒤를 따라 건너편 햄버거 가게로 가는걸 보니 음식을 사 주겠다고 말한 것 같았습니다. 얼마 뒤에 손님은 다시 가게로 와서 요거트를 마저 끝냈습니다. 손님에게 나는 감사하다고, 친절을 베푸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고 인사했습니다. 그 손님은 별 일 아니라고, 누구라도 어려운 시절을 지날 때가 있지 않냐고 말했습니다. 손님과의 이 짧은 대화가 홈리스를 보는 나의 시선을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그 후로는 가게에 홈리스가 들어 오면 싫은 내색 하지 않고 요거트를 한 컵 만들어 줍니다. 자기들 중에서 누가 가장 높은가 따지는 제자들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내가 그들보다 낫지 않다는걸 알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서로 따질 때 뭘 기준으로 삼았는지 궁금하긴 합니다. 누가 예수님의 심부름을 많이 했는지? 예수님 질문에 답을 잘 하는 사람? 따로 부르시는 3인방? 무리들도 아는 제자? 돈주머니를 맡은 유다? 예수님의 기준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나중이 되고, 종이 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린이를 팔에 안으시고 그 어린이를 보살피는 사람은 예수님을 받드는 것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엄청난 말씀입니다. 어린이와 하나님이 동격인겁니다. 자격이나 권리, 존재감도 없는 무용지물 같은 어린이에게 예수님은 당신과 하나님을 비교 하십니다. 과장법이요 수사요, 은유라고 보고 그저 넘길 수 없는 선언입니다. 세상의 기준이나 인기에는 신경 쓰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이 우러러 보는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라고 착각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전혀 새로운 사고와 태도를 요구하는데 우리는 똑같은 상태로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고 기대합니다. 나는 바뀌지 않아도 괜찮기를, ‘이 모습 이대로’ 은혜 받을 것을 원합니다. 바뀌는 정도가 아니라 뒤집어져야 하는데, 한 두 가지를 바꾸는게 아니라 거의 다 바뀌어야 하는데… 지금 내가 하는 생각이나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이 예수님과 어울리는지, 예수님도 좋아할 것들인지 묵상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깨닫게 하시고, 깨달음을 실천하며 살게 하소서. 기도와 삶이 서로를 받쳐주게 하소서.

    Liked by 2 people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주님

      Like

  3.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오늘은 누가 큰 자인가로 다투었던 제자들 이야기. 가장 높아지려는 자는 가장 낮아져야한다.

    생각해 보면 평생 남과 비교하며 그래도 좀 더 높은 데로 오르기 위해 애써온 일생인 것 같아요.

    미국 땅에 처음 온 순간부터 이민자라는 신분이 붙으며 사회적 계급이 강등되었죠. 그래서 힘겨웠고 늘상 깊은 박탈감이 있었던 것 같네요.

    오늘도 주님은 좁은 길로 오라 하시네요. 하늘의 영광에 들기를 원하니? 그럼 낮은 곳으로 네 존재를 내려보내고 인생에서 만나는 이들을 대가 없이 섬기라 하시네요.

    제가 그렇게 할 수 있을지요? 아무 바라는 것 없이 다른 이들의 종이 되어 발을 씻겨 줄 수 있을지요? 주님이 그리 하셨듯이?

    아무 대가 없이 어린 아이 하나를 껴안아 주고 내 인생 안으로 영접해 드릴 수 있을지요?

    주님은 가르침은 늘 어렵네요.

    아빠 아버지, 이 아침 제 믿음 없음을 도와 주세요.

    Liked by 1 person

  4. gachi049 Avatar
    gachi049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37) 사회적으로 약하고 천대받고 고통을 격는자들 중 하나만 이라도 품으면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다라는 말씀이 나의 영혼을 자극합니다. 남을 섬긴다는 것, 특히 사회적으로 약자와 소수자들을 품고 섬긴다는 것은 나자신을 낮추지 아니하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내마음을 내자신도 모른다는 말이 있듯이 내마음을 통제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성령님만이 가능한 줄 믿사오니 성령님께서 내마음에 왕으로 오셔서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남은 여정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Liked by 2 people

  5.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주여

    Like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