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장 14-15절: 회개와 믿음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체포되자 이제 당신 차례가 왔다고 생각하셨다. “요한이 잡힌 뒤에”(14절)는 “요한이 넘겨진 뒤에”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다. 요한이 체포된 사건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암시다. 그를 권력자들에게 넘겨준 것은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세례 요한은 유다 광야를 사역지로 택했는데, 예수님은 갈릴리를 사역지로 삼으셨다. 

마가는 예수님이 설교한 내용을 “하나님의 복음”(14절)이라고 정의한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그리스도로 보내신 것이 복음의 핵심이므로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1절)이라고 할 수도 있다. 예수님이 복음인 이유는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기 때문이다(15절). 여기서 말하는 “때”는 ‘카이로스’의 번역이다. 헬라어에서 ‘크로노스’는 물리적인 시간을 가리키고 ‘카이로스’는 중요한 시점을 가리킨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말한 “그 날”과 같은 의미로서, 하나님께서 마침내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는 때를 가리킨다. 하나님의 구원 약속을 믿는 사람들에게 “때가 찼다”는 소식은 복음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이루어진 상태를 의미한다. “가까이 왔다”는 “다 왔다” 혹은 “시작되었다”고 번역하는 것이 좋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기간이 다 차서 그 계획이 실현되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때가 찼다”는 말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은 같은 뜻이다. 예언자들이 예언한 그 시간 즉 하나님이 직접 다스리시는 때가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이제 새로운 시대가 동터 왔다는 뜻이다.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면 삶의 자세도 달라져야 한다. 예수님은 복음을 믿는다면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신다(15절). 하나님께서 구원 역사의 새 장을 시작하신다면,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가던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께 돌이켜야 한다. 그것이 “회개”다. 회개를 의미하는 히브리어는 ‘슈브’인데, 그것은 삶의 방향을 180도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에게 등 지고 살던 사람이 하나님에게도 방향을 돌리는 것이 회개다. “복음을 믿으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직접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믿으라는 뜻이다. 두 명령문은 현재형으로 되어 있다. 회개와 하나님께 대한 신뢰는 부단히, 꾸준히, 계속하여 이어져야 하는 삶의 태도다. 

묵상:

헐뜯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15절의 말씀을 가지고 “2천 년 전에 가까이 왔다는 하나님 나라가 왜 아직 오지 않았느냐? 예수님이 거짓말을 했거나 속고 있었다는 뜻이 아니냐?”고 묻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하신 말씀의 뜻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트집을 위한 트집을 잡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다스림이 이제 시작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 계획을 시작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니 “때가 찼다”는 말이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은 모두 당신 자신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시작되고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복음을 믿는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분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인정한다면, 가장 먼저 회개가 일어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이 역사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우리 자신의 죄를 자각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저절로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죄를 청산하지 않고는 하나님에게 돌아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은 영원한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 사실을 진실하게 자각한다면 두 손 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회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회개는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등 지고 살다가 하나님에게로 방향 전환을 했다면, 이제는 그 길로 꾸준히 걸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어떤 교리를 배우고 받아들이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인격이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살아가는 과정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습니다”라는 말은 “내가 예수님을 의지하고 삽니다”라는 뜻입니다. 그것이 회개 후에 우리에게 일어나야 할 일입니다. 

진정한 회개 없이 믿음의 삶은 불가능합니다. 믿음의 삶이 없다면 회개는 무의미합니다. 회개와 믿음, 하나님을 향해 돌아서는 것과 그분을 신뢰하고 살아가는 것은 분리할 수 없는 짝입니다.

기도:

오, 주님, 저희에게 복음을 깨닫게 해주십시오. 그리하여 진정한 회개가 우리 안에서 일어나게 하십시오. 온전히 주님을 향하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길을 올곧게 걸어가기를 소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혜를 온전히 알고 누리기를 원합니다. 도와 주십시오. 붙들어 주십시오. 아멘.     

3 responses to “마가복음 1장 14-15절: 회개와 믿음”

  1. billkim9707 Avatar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습니다. 주님만 바라보고 순례의 길을 갈려고 하면서도 자주 세상의 부귀영화를 뒤돌아보는 쫄보입니다. 십자가 없이는 한순간도 못사는 가련한 신세입니다. 모든 생각 언행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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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 (history, work) 가 이제 이 땅에서 시작되었다는 선포라고 이해합니다. 선포 속에는 예수님 당신의 적극적인 참여가 담겨 있고, 듣는 이들을 초대하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회개하라는 말씀은 잘못을 뉘우쳐 새로와진 마음으로 새 일을 시작하라는 뜻이며 동시에 방향을 바꾸라는 -땅이 아니라 하늘이라는, 보고 있는 이 세상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새 세상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럴 때 회개는 한 번에 그치는 것이기 보다 계속하는 일, 늘 해야 하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일과 닮기도 했습니다. 어느 하루 말씀을 읽으며 깊고 심오한 회개와 결단의 시간을 갖기도 하고, 매일 마음을 닦아내는 일을 꾸준히 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침묵으로도 말씀하시고 폭풍이나 폭포수 소리처럼 감각을 압도하며 알리시기도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시간은 우리가 인식하고 인정할 때 시작하는 카이로스의 시간이며, 처음과 끝이라는 매듭을 가진 우리의 시간 이해에 스며들어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크로노스의 시간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때가 와서,’ ‘시간이 딱 맞게,’ ‘바로 그 때에’ 등의 표현을 쓸 때는 우리가 컨트롤하는 것 이상의 오묘한 일치가 있다는 것을 은연 중에 담은 것입니다. 회개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길을 가다 멈추어 방향을 돌이키는 일, 뒤돌아 서는 행동이 회개라고 말합니다. 오던 길을 다시 되돌아 가는 것은 회개가 아닐 것입니다. 길을 가다 멈추는 것은 그 길이 옳은 길이 아니라는 깨달음이 왔을 때, 이 길로 계속 가면 안되겠구나하고 자각할 때 일어납니다. 뒤돌아서서 (등을 지고), 하나님을 향해 방향을 바꾸는 것이 회개입니다. 나의 삶에서 바꾸어야 하는 부분이 뭘까 깊이 묵상하며 주님의 지혜를 구하고자 합니다. 작심삼일이 되고 마는 새해결심도 어려운 마당에 의미있는 회개란 얼마나 더 어렵겠나 싶지만, 원리를 깨달으면 적용은 의외로 순순히 따라오기도 합니다. 예전엔 거리에서 보는 홈리스에게 돈을 주는 일이 그리도 어려웠습니다. ‘돈 주면 술 사먹고, 약 사먹으니까 아무 소용없다’는 말이 들렸기 때문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그건 내가 염려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돈을 줘도 아무 소용이 없으니 그를 못본 척하고 지나간다는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다음부턴 될 수 있으면 보일 때마다 돈을 주었습니다. 한 달 전쯤에 갑자기 남편이 이런 말을 합니다. ‘1불, 2불로 뭘 살 수 있겠어? 5불씩 주자.’ 남편과 내가 깨달은 원리는 내게 의미 없는 액수는 남에게도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찜찜함 -주는게 맞나?-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돈을 줄 때, 상대방이 고맙다며 받을 때 순간적으로 서로의 눈을 봅니다. 사람 대 사람으로 서로를 보는 그 순간에는 찜찜함이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이 늘 내 안에서 들리기를 원합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회개가 없는 세상, 복음을 모르는 세상에서 돌아서게 하소서. 주님을 향해 걷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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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Lucy Avatar
    Lucy

    240104 막1:14-15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셨다.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마가복음서‬ ‭1‬:‭14‬-‭15‬ )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복음을 전하셨다. 

    그 때는 요한이 잡히고 난 뒤였다. 그리고 그 때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말씀하신 때였다.

     하나님의 때. 

    하나님이 복음이 선포되는 그 때에 대해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전과 다를 것이다.’

    ‘지금까지 유지되어 왔던 불합리한 사회가 새로워질 것이다.‘

    ’메시아가 왔으니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아가오셨으니 그들이 꿈꾸던 이상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때가 찬 그 때. 예수님이 복음을 선포한 그 때 요한이 잡혔다. 복음으로 인한 희망찬 내일이 주어질 줄 알았는데, 주님의 길을 예비한 세례요한은 잡혀간 것이다. 예수님이 오셨는데, 왜 세례요한이 잡혀가게 두셨을까? 당연히 요한을 구해내시고 나서 복음을 말씀하셔야 하지 않을까?

     인간의 이성적인 판단으로는 이것이 순서에 맞고, 합당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복음의 본질은 아니다. 

    그렇다면 복음의 본질은 무엇인가?

    더 나은 삶과 내가 바라는 이상이 이뤄지는 것인가? 

    문제들이 모두 해결되고, 더 나아지는 것인가? 

    아니다. 

    [복음은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복음은 내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인 것을 직면하고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인해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것이 복음이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에게 더 나은 삶이 주어지는 것, 죽음을 면케 되는 것이 복음 자체는 아닌 것이다. 

    제자들은, 특히 유다는 혁명가 예수님을 원했다. 예수님이 잡혀가셔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 순간까지도 훌훌 털어버리고 의연하게 십자가에서 내려와 예수님을 모함하고 못박은 자들을 향해 불같은 심판을 하시리라 기대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실 수 있음에도 저항하지 않으시고, 묵묵히 십자가를 지셨다. 우리의 죄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길을 가셔야 회개의 길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길이 열린다는 것을 아셨다. 

     오늘 묵상을 통해 잡혀간 세례요한의 상황과 그 앞에 펼쳐진 복음의 상반된 모습을 보면서 나의 생각과 방법으로 복음을 해석하는 태도가 있었음을 회개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회개를 통해 나의 교만함이 거두어지고, 비로소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주님! 복음을 저의 방식으로 해석하려 했던 오만함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복음은 합리적이며, 이성적인 것에 있지 않고, 나의 죄를 직면하고 회개하는 것. 그리고 그 여정을 지나 하나님을 순전함으로 따르고 믿는 것으로 부터 시작됨을 배우게 됩니다.

    주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눈을 열어 주 보게 하시고,  귀를 열어 주의 음성을 듣게 하소서.  그래서복음이 복음되는 삶을 살게 하여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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